'지리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7.09.10 평전 이현상
  2. 2007.09.05 智異山1 (1)
남부군 사령관 이 현상을 보는 시각 중에 대표적인 것이 남부군의 저자인 이태의 것이라고 할 수있다. 한 마디로 비운의 인물이란 것인데, 남한에서는 좌익이란 이름으로 단죄되고 북한에서는 남로당 계열의 인물로서 박헌영, 이승엽의 처형과 함께 지리산에 버려진 존재라는 것이다. 이 태는 남부군의 성공적인 출판 이후에 이 현상에 관한 책을 따로 썼다. 남부군, 비극의 사령관 이현상.(아쉽게도 아직 구하지 못하고 있다) 비극의 사령관이란 말에는 어떤 애상한 감정이 따른다. 사방에 있는 군경의 추적대를 피해 헐벗고 굶주린 모습으로 눈 덮인 그러나 민둥산이 되어버린 지리산 어느 계곡의 돌 틈 밑에서 은신하고 있는... 과거의 경력으로 보아서는 절대 그래서는 안되는 인물. 만인의 존경을 받던 사람이 이제는 그들만의 선생이 되어버린 이런 이현상을 떠 올리면 당연히 비극의 인물이라고 생각을 할 수 밖에 없겠다.
또 다른 빨치산인 이 인모는 이 현상을 평가절하하고 있다. 당시 이 인모는 종군기자로서 이 현상과 6개 도당위원장의 모임에 참여했다고 한다.(송치골 6개도당 회의) 모임의 목적은 각 도에 흩어진 6개 도당의 빨치산 부대을 이 현상의 남부군의 支隊로 재편성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이 일은 이 현상이 강원도 후평에서 이 승엽(당시 군사전권 위원장, 조선 인민유격대 총사령관)의 지시에 의한 것이지만 문서로 작성되지 않은 지시였기에 많은 이의제기가 있었다고 한다. 전남, 전북 도당위원장의 강한 이의제기에 의해 부분적인 개편만 이루어졌다. 이를 지켜보는 이 인모는 이 현상에 대해서 좋지 않은 시각을 가지게 된다. 남한 전체 빨치산의 사령관이란 직책에 연연하는 영웅주의적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빨치산 중에서도 남부군 소속이 아닌 각 도당에 소속된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던 모양이다.
작가는 또 다른 시각으로 이현상을 본다. 이 인모의 의견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남부군의 재편성은 이 승엽 개인의 의견이 아닌 김일성의 결정이었으며, 이 현상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현상은 당의 의견을 충실히 지키기 위해 그 후에도 노력했다고 한다. 이 태의 의견에 대해서도 아니라고 한다. 비극의 사령관이라고는 하지만 북에 의해 버림 받은 일은 없다고 한다. 이 현상과 김 일성의 관계는 서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그런 관계였다고 한다. 이 현상이 후평에서 다시 백두대간을 통해 남하하기 전에 김 일성으로 부터 이 현상을 격려하는 편지를 보낸 것이라든지, 남한에서 살 수없어 월북한 이 현상의 가족이 북한에서 환대받고 戰後 내내 돌보아 준 것이라든지, 이 현상의 죽음이 알려진 직후, 영웅의 칭호를 주고 혁명 열사의 무덤에 가묘를 만든 것이라든지, 남로당 숙청시 박헌영과 이승엽 등에 대한 사형을 내리면서도 이 현상에게는 그런 숙청을 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예로 든다. 적어도 북에서 버림 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태는 롬멜의 장례식을 예로 들면서 이는 김 일성의 정치적 술수라고도 말을 하고는 있다. 나로서는 알 수없는 일이다.

이는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이고 작가는 이런 이 현상의 마지막을 언급하기 보다는 그의 항일행적과 빨치산의 시절에 있었던 여러 에피소드를 언급함으로서 오늘날의 굴절된 시각으로 보는 이 현상이 아닌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시각에 보는 이 현상을 적으려 애를 쓴 느낌이 있다. 이 책의 장점이다.

그런 의미로 본 이 현상은 보기 드문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이승엽처럼 고문에 굴해 전향하지도 않았고, 박헌영처럼 일제말기를 은둔하지도 않았으며, 병보석으로 풀려난 이후에도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피하는 중에도 공산주의의 의한 민족해방에 열정적이었다. 빨치산 시절에도 함부로 군인과 경찰을 죽이지 않았으며 보급투쟁의 과정에서도 가능한 한 양민을 괴롭히지 않을려고 노력을 했다. 많은 날을 굶어가며 때로는 동지들이 죽어가는 그런 때에도 이런 일들을 지켜갔다는 것은 그의 굳은 신념과, 그의 뛰어난 지도력이 아니고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젊어서는 일제에 의해 중년이 되어서는 한국 군경에 의해 숨어 살았던 인물이라 그의 말이나 글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아 직접 그의 생각을 알 수없다는 것이 이 평전이 가지는 아쉬움이라고 하겠다. 어찌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공산주의 사회주의 주장과 책을 접하면 지금도 국가보안법에 걸리는 세상을 지난 50년을 지냈으니 어찌 그런 것이 남아있기라도 하겠는가.

새로 알게 된 것도 있다. 이 현상은 한국 동란 중에 대구 영천을 중심으로 한 낙동강 후방에 침투하여 미군을 교란했다고 한다. 한국戰史에는 기록이 되지 않았지만 사실 인 것 같다. 남부군에서도 이 부분은 이 현상의 산중지처로 알려진 하모 여인(하수복)의 말을 빌어 지나가듯이 언급 되어 있다. " 낙동강 후방에서 싸울 때 말이지요, 아습나갔다 새벽녘에 전리품을 듬뿍지고 아지트로 돌아올라치면 선생님이 다려나와 손들을 붙드시고 내게 권한이 있다면 동무들의 가슴에 훈장을 주렁주렁 달아주고 싶구나 하시는 거여요. 그 말씀만 들어도 밤새의 피로가 한꺼번에 가시는 것 같았어요"____개정판 남부군 298P
이 현상은 주어진 굴곡된 현실을 진실된 세상으로 바꾸고자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다. 역사의 평가는 이와 다를 수 있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Posted by 紅衣
작가 이병주의 고향이 나와 同鄕인 경남 河東이다. 지리산 줄기가 남해로 빠지기 전, 그 마지막 걸음을 멈추고 산 줄기의 오른쪽 옆구리를 돌아 흘러가는 섬진강 강을 내려다 보는 1천 미터의 큰 봉우리인 형제봉이 내가 태어난 마을의 主山이었다. 박경리님의 "土地"의 주무대인 마을이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도 한참인 68년에 태어난 나조차도 어른들은 간간이 자신들이 겪은 빨치산의 이야기를 했다. 요즘처럼 내놓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외할아버지 형제분이 산에서 내려운 사람들의 보급투쟁의 결과물을 등에지고 그 형제봉을 넘어 옮겨다 주는 과정에 국군의 박격포 포탄에 죽어가고 흩어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형제간의 생사를 몰라 비오듯 쏟아지는 폭탄의 한 가운데 서로 찾고 찾아서 울고 그 혼란을 틈타 달아나 다시 산에서 내려온 이야기는 어린 맘에도 빨치산과 내가 막연하게 나마 서로 연결된 느낌을 받게 해 주었다. 태백산맥과 남부군의 출간으로 인해 그런 느낌은 점점더 강해졌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졸업을 앞둔 91년 어는 여름날, 난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살아있는 빨치산을 직접 대면하게 된 것이다. 그 분의 이름은 "이 인모". 월간지 말지에 자신의 이야기를 수기로 적어 화제가 된 분으로 당시에 노환으로 넘어진 머리의 상처가 문제가 되어 부산대학병원에서 수술하고 입원을 하게 된 사정이 있었고, 일가 친척이 없었던 그 분을 학생 몇몇이 도와드리는 일을 하게 된 것으로 난 그 분의 병실에서 몇가지 잔 신부름과 소변을 받아내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당시의 충격은 대단했다. 책 속에서만, 어른들의 말 속에서만 존재했던 기억에만 의존했던 사실이 살아있는 역사로서 내게 다가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난 그 충격을 흡수할 만한 여력이 없었나 보다. 이 인모 할아버지를 보고도 한 마디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냥 바라 보기만 했을 뿐이었으니....

이런 몇가지 경험은 그 후에도 지리산과 빨치산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하고픈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일까?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던 지리산을 작년부터 올라가 보기 시작을 했다. 한 번의 종주와 몇 군데의 계곡과 능선을 다니게 된 것이다. 그 거대한 산줄기 앞에 감격하고 힘겨워하는 중에도 항상 내 맘은 빨치산의 흔적과 기억을 떠 올렸다. 그래서 난 그 옛날의 남부군을 다시 읽고, 지금은 구하기도 어려워진 이 인모 할아버지의 종군일기를 어렵게 구했고, 절판이 되었다고 했던 이 병주의 지리산을 인터넷 헌 책방에서 구해서 이제 읽고 있는 것이다.(지리산은 최근 다시복간되었음)
이 병주님의 지리산은 내가 보고싶어하는 관점과는 다른 각도에서 쓰여진 책이다. 한 마디로 재미는 없다. 새로운 사실을 적은 것도, 역사에대한 새로운 지평을 넓혀주는 책도 아니다. 6권의 대부분은 정말 말 그대로 이태의 남부군을 그대로 옮겨적은 표절문학 그 자체이다.그런 소문을 들은 나는 그 동안 이 책을 회피해 왔다고 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하지만 40을 바라보는 지금은, 左든 右든 이제는 좀 편안하게 대할 수 있는 나이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은 떠나온 고향 언저리에 관한 이야기만 나와도 반가운 나이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어 나가면서도 작가의 관점을 부정하고 몇 번이고 덮을 번 하다가도 다시 읽어 가는 것은 어쩌면 소설 속 주인공의 말대로 자기 수양의 과정일 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紅衣

Profile for generalred

티스토리 툴바